일상

술주정

아솔 2022. 8. 14. 00:35

 

베프와 와인을 마셨다. 원래 6시 약속이었는데, 내가 갑자기 주말출근을 하게 되는 바람에 8시가 넘어서 만났다. 요즘 회사일로 심란해서 오늘 꼭 친구를 만나고 싶었는데, 갑작스런 회사 호출로 못 만날뻔 해서 더욱 심란해진 마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오늘따라 술이 왜이리 잘 들어가던지. 알쓰 주제에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고 친구에게 속 얘기를 했다.

 

"내 일은 나처럼 회사를 대충 다니는 사람이 할 역할이 아닌 것 같아. 좀 더 회사에서 성공하고 싶은 야망이 있는 사람이 내 역할을 했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 아침 일찍 출근하고, 근무시간 외에도 회사 메신저에 상시 대기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내 일을 맡았다면 내 상사랑 동료들도 훨씬 편했을텐데. 결국 나는 민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내가 그만둬 주는게 결국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까?"

 

 

 

"우리 회사는 똑똑한 사람을 바라지 않아. 진심으로 멍청한 사람을 원해. 예를 들어, 우리 회사에서 메론 판매를 늘리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면, 정말로 메론을 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직원을 원하지 않아. 그냥 위에서 시키는대로 메론의 역사와 메론의 품종 같은 것들에 대한 보고서를 써 줄 사람이 필요할 뿐이야. 메론을 많이 팔기 위해 메론의 역사를 조사하는 것은 자원 낭비라는 의견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야..."

 

"나는 큰 조직의 일원으로 자부심을 느끼기보다는, 그냥 작은거라도 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었어.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성향의 문제였던 거지. 예전엔 내 성향에 대해 몰랐어. 내가 회사를 다녀야 하는지 그만둬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는데 요즘은 점점 확신이 들어. 나는 내가 직접 뛰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 말야."

 

얘기를 하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친구는 내가 회사 얘기를 하면서 우는 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한다고 했지만, 잘 해보려고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직원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든 사람들과 정든 직장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점점 깨달아가는 진실이 슬프고 또 막막했다. 이제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