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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스포주의)

 

영화 초반부에선 화가 났고, 중반에는 슬펐고, 마지막엔 판타지같은 마무리가 조금 아쉬웠다. 현실의 김지영(정유미 분)에게는 대현(공유 분)같은 남편도, 미숙(김미경 분)과 같은 엄마도, 그런 아름다운 마무리도 없을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다. 하지만, 공기와도 같이 우리 몸에 스며들어 있는 혐오와 차별을 자각하고, 또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영화의 결말 비스무레한 현실까진 나아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성차별은 여자가 할까 남자가 할까? 어머니에게 남자형제와 차별받은 딸들이나 시모에게 부당대우를 받는 며느리들의 이야기는 내 주변에도 흔하디 흔하다. 영화속에서 어떤 슈퍼마켓의 여자 손님은 '제가 첫손님은 아니죠?' 라며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다. 혐오 문화는 그 사람이 마시고 자란 물처럼 본인도 모르게 스며들어, 결국 스스로의 삶도 불행하게 만들게 된다. '여자의 존재'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과연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을까?

 

혐오 문화 속에서 그럼 남자는 행복할까? 영화 속 남자들은 아내가 정신 이상을 갖게 되거나, 또는 사랑하는 딸에게 깊은 상처를 준 아버지가 되고 만다. 특혜를 달라고 떼쓴 적 없지만 자연스럽게 받아온 문화에서 공감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존재 - 엄마, 누나, 여동생, 그리고 아내 - 를 이해할 수 없다. 골목길에서 내 뒤를 걸어오는 사람의 성별을 확인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필수적인 일이라는 걸 공감할 수 없다면, 결코 진정한 소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여자로서의 내 삶에 대해 돌이켜 보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경험한 가족안의 딸아들 차별은 받아본 적이 없지만, 명절과 제사문화의 부조리와, 그 안에서 내 어머니와 여성 가족 구성원들이 받는 부당함은 평생을 보아왔다. 명절 아침 소파에 앉아 티비만 보고있는 남자들을 보며 치밀어오르는 화를 누르는 것은 명절 연례 행사가 되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차별은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특히 이성관계에서- 내 존재를 남자보다 수동적인 역할로 규정해왔고, 마음 한군데서는 백마탄 왕자를 바라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삶의 주체성을 내가 갖다버리고 있었으면서, 겉으로는 양성평등을 외쳐온 것이다.

 

초등학교 때 도덕교과서에서 남편이 부인에게 반존대를 하고(~했소?), 부인이 남편에게 존대를 하는 것이(~했어요.) 너무 이상해서 엄마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엄마의 대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지영은 그의 엄마인 미숙보다 잘 먹고 잘 입고 대학까지 나왔지만, 결국 여성으로서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영의 딸인 26개월 아영이는 더 나아진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렇다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지만, 영화처럼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내 안과 밖의 혐오와 차별을 거둬낼 수 있도록 나아가야겠다. 내가 살 세상을 만들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