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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월든>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림원

 

미니멀리스트의 성서(?)같은 책, <월든>. 2년동안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야기.

비록 다 못 읽고 도서관에 반납하긴 했지만, 삶의 핵심을 찌르는 인상깊은 구절들이 좋았어서 블로그에 남긴다.

 

 

인생이라는 것은 내가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하나의 실험이다. 선배들이 인생을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나한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세대는 지나간 세대가 벌여놓은 사업을 마치 난파선처럼 버리고 떠나는 법이다.

 

인간에게는 여분의 필수품을 손에 넣는 것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있다. 즉 비천하고 힘든 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휴가가 시작된 지금,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손에 넣는 데 드는 비용은 당장이든 나중이든 그 물건과 교환해야 하는 삶의 양이다.

 

→ '화폐'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물건을 '시간(삶)'으로 산다는 진실을 잊게 하여, 고로 더 많은 '시간(삶)'을 바쳐 '소비'에 몰두하게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몇 천만원이 아닌 2년의 인생을 내라고 한다면, 나는 그 값의 차 한대를 기꺼이 살 수 있을까? 몇 백만원어치의 옷이라면? 매일 바꿔입을 옷을 사기 위해 내 삶을 바치고 싶지 않다.

 

젊은이들이 당장 인생을 실험해보는 것보다 삶을 사는 법을 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까?

 

나는 내가 재학중에 항해학 강의를 들었다는 것을 대학을 졸업할 때에야 알고 깜짝 놀랐다. 내가 배를 몰고 항구 밖으로 단 한 번이라도 나갔다면 항해학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배웠을텐데 말이다.

 

피치버그까지의 거리는 50키로미터, 차비는 90센트다. 이 금액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다. 지금 도보로 출발한다면 오늘 저녁 안에 피치버그에 도착할 수 있지만, 노동자는 하루를 바쳐 90센트를 벌고 내일이나 피치버그에 도착할 것이다. (책 내용 요약)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육체노동을 할 만큼은 깨어있다. 하지만 지성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만큼 깨어있는 사람은 백만 가운데 하나뿐이고, 시적인 생활이나 신성한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깨어 있는 사람은 수억 가운데 하나 뿐이다.

 

인간이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삶을 향상시키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보다 우리에게 고무적인 것은 없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을 깊이 살고 싶었고 삶의 정수를 죄다 흡수하고 싶었고, 스파르타인처럼 강인하게 살아서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파괴하고 싶었다.

 

→ 인생을 '의도적'으로 산다는 말이 참 좋다. 나도 그처럼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다.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다. 정말이지 삶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다.

 

삶을 놀이로 여기는 아이들은 인생의 참된 법칙과 관계를 어른들보다 더 명확하게 분간해낸다. 어른들은 인생을 가치있게 살지도 못하면서 경험 덕분에, 즉 실패 덕분에 자기가 아이들보다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거기에는 우리가 지나갈 길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새로운 삶을 고안하고 구상하는 데 생애를 바쳐보자.

 

 

다시 보니 더 좋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정말로 '진짜'다. 얼른 도서관에서 빌려와 마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