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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혼자 여행하는 이유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녘에 버스를 탈 때면, 스물두 살 캐나다 워홀 시절에 혼자 떠났던 시애틀 여행이 생각난다. 벤쿠버에서 시애틀까지 버스로 얼마나 걸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주위가 깜깜한 시간 버스를 타고 꽤 오래 달려 국경을 넘었었다. 스마트폰도 구글맵도 없던 시절, 영어도 못하면서 겁은 또 왜 그렇게 없었는지. 아마 그 때는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왜 혼자하는 여행을 좋아했을까? 자주 외롭고 쓸쓸하기만 하고, 맛집 투어나 인생사진을 남기기도 어려운데. 줄을 서도 둘이 서는 게 여러모로 편하고, 길을 찾아도 둘이 찾는 게 더 빠른데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혼자 여행을 하는 순간에 느끼는 자유로움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건 혼자서 내 마음대로 일정을 짤 수 있다는 단편적인 자유가 아니라, 세상 어디든 내 두 발로 갈 수 있고 어디서든 먹고 자고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차오르는 보다 근본적인 자유로움이었다.

 

그래서 나는 쓸쓸해 하면서도 뿌듯함 비슷한 기분을 느꼈구나. 동양인이 아무도 없어 낯설고 두려워하면서도 스스로 해내는 데서 재미있어 했구나. 나는 단순히 자유를 느끼고 온 게 아니라,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돌아왔던 거였다. 이제 조금 이해가 간다. 내가 왜 혼자 여행을 좋아했었는지, 그리고 왜 최근 들어 혼자 떠나는 것을 조금씩 두려워하기 시작했는지도. 나는 전보다 덜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요 며칠 하노이행 티켓을 검색만 반복하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도시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까봐, 혼자가면 심심할까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여행의 목적이 신기하고 재미있는 구경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일단 어디로든 떠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내 자유의 그릇이 점점 작아져 더이상 혼자 여행을 갈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노이든 어디든, 다시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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