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해야 하는가?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하는가?
명품백을 가져야 하는가?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가?
결혼을 해야 하는가?
승진을 해야 하는가?
화장을 해야 하는가?
효도해야 하는가?
미용실에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가?
두 달 전쯤 메모장에 적어봤던 '하는가?' 목록이다.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많은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아니 사실 '당연하다'는 생각조차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당연하다고 할 것도 없이' 날씬해야 하니까 주기적으로 다이어트를 해왔고(성공 여부는 별개다...), 매일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출근을 했었다. 마치 매일 양치를 하거나 물을 마시는 것이 당연했던 것처럼.
그런데 공기속에서 숨을 쉬듯이 자연스러웠던 이 행동양식 혹은 가치들이 정말 당연한 것인지, 언젠가부터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저 중에 상당수를 갖지 못한 ㅡ날씬, 결혼, 명품백?ㅎㅎㅡ 나의 생존 본능이 일으킨 의문이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당신은 최소 셜록..) 과거엔 인간이라는 존재도 없었는데, 인간이 꼭 해야하는 것이 태초에 있을 수 있는가? 라는 개똥철학으로 최근엔 미용실을 멀리하고 단벌 신사로 출근하는 자유를 누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많은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나의 모습은? 결혼을 해야만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간 하고 싶다) 승진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승진 누락은 싫다) 모든 사람이 날씬해야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나는!! 날씬하고 싶다) 매일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건 아니다. (그래도 어제 안 입은 옷을 입는게 낫잖아..?) 그렇다. 오히려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비겁자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자유롭고 싶으면서도 또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이상적인 수준이 무엇인지는 알아가고 있지만, 내가 디딘 자리는 아직도 그 곳인 거다.
틀을 깨는 척, 그치만 어쩌다 전혀 의도치 않게 틀 안에 안착한 사람이 되고픈,
나 정말 그래야 하는가?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가의 시작은 요양으로 (2) | 2019.12.29 |
---|---|
강하늘의 재발견! <동백꽃 필 무렵> (2) | 2019.12.26 |
운전연수 첫째 날 (0) | 2019.12.22 |
극적인 타협 (0) | 2019.12.20 |
거슬리지 않기 실험 (4) | 2019.1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