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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내가 행복해지는 이해와 공감,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허혁 지음, 수오서재 (오늘의 독서 기록, 1~51쪽)

 

시청에 접수된 어르신들의 대표적인 불만 중에 하나가 행선지를 물어보면 기사가 대답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교육 중에 그 말을 듣고 내심 기뻤다. 나만 그런 줄 알았다가 다른 기사도 나랑 같구나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주차된 차들을 피해 정류장을 들락날락하다 보면 저절로 화가 쌓인다. 나갈 때 잘 비켜주지도 않는다. 밀어붙이다 종종 시비가 붙는다. 만원버스 앞을 칼치기로 들어오는 운전자도 있다. 하루면 한두 번은 아찔한 상황이 꼭 생긴다. 쫓아가서 작살을 내고 싶은데 승객들 때문에 참는다. 하루 종일 힘들었을 텐데 얼른 집에 가서 쉬어야 하지 않겠는가! 시내버스기사는 서비스직이 아니고 결국 운전직이라 버스 안보다 버스 밖이 열 배는 힘들다. 짜증은 밖에서 시작되는데 엉뚱하게도 사고는 매번 기사와 승객 사이에 난다. (22쪽, 언제나 문제는 몸이다)

 

아예 빨강, 노랑, 파랑으로 기사의 감정상태를 알려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모든 감정노동자의 가슴에 명찰 대신 '감정표시등'을 달아주는 상상을 해본다. 전주 시내버스기사가 하루 열여덟 시간 운행 후 스트레스 수치를 잰다면 인간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작은 포유류였을 때 막다른 길에서 아나콘다를 만난 스트레스 수치와 맞먹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기사 생활 몇 년 새 확 늙어버린 내 얼굴을 보고 혀를 차던 모습이 눈에 아리다. (51쪽, 소리커튼)

 

30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나는 버스기사들이 불친절하고 난폭운전을 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왔다. 그런데 허혁 작가의 책을 보며 알게 되었다. 일부러 못하고 싶은 기사가 있는게 아니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여건과 상태가 있을 뿐이라는 걸. 나는 그동안 타인에 대해 얼마나 알면서 잘난 척을 해온걸까? 나도 영업부서에 있을 때는 하루에도 몇 번 씩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일을 겪었고, 그 땐 도무지 다른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할 겨를이 없었다. 나에게 사정이 있듯이 남에게도 사정이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그 '타인의 사정'에 기분이 나빠진 내 마음만 중요해지곤 한다.

 

이제 50여쪽을 읽었을 뿐인데, 내일 버스를 타는 마음이 조금은 달라질 것 같은 느낌이다. 버스기사를 이해하게 되는 만큼 버스를 타는 내가 더 행복해질 것 같아 책의 남은 부분들이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