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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진짜 생을 살고 싶다면,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 바다출판사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새로운 문학을 일으킬 후배 소설가를 고대하며, 그들을 위한 조언을 담은 에세이이다. 문학 언저리 어디쯤에서 적당한 소설들을 내놓으며 소설가 대접에 취해 살고 싶은 이 말고, 진정 인간의 영혼을 파고드는 걸작을 남기겠다는 각오로 소설에 도전하는 사람을 위해 쓴 책이다. 소설가로 사는 법을 말하고 있지만, '소설가' 대신에 '예술가', 또는 '자유인'으로 사는 법이라고 해도 맞을 것 같고, '진짜 인생'을 사는 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철저히 자립할 것, 무리지으려 하지 말 것, 열중하고 몰입할 것, 엄격하게 자기관리할 것. 이런 삶이 너무하다고 생각된다면 소설을 쓰지 말 것.'

 

엄격하고 단호한 그의 말투, 적당하게 할거면 그만두라는, 돈이 없을때는 그냥 죽겠다는 각오로 임하라는 말에서 오히려 후배 소설가와 문학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소설가를 꿈꾸지는 않지만, 그의 조언을 등불삼아 내 길에서 제대로 도전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인생의 스승을 만난 것 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명징하게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안전한 해변에서 파도에 약간 몸을 적시면서, 먼바다를 바라보고 그 감상을 끄적거리는 데 그친다면 문학에 도전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24쪽)

 

이들은 문학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 비슷한 것에 살짝 손을 담그고 그 주변에 감도는 아련하고 모호한 분위기에 흠뻑 젖는 것일 뿐입니다. 문학을 추락과 자멸의 길로 모는 주범입니다. 이는 애국자라 자부하는 사람들이 때로 국가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것과 아주 유사합니다. (30-31쪽)

 

재능의 유무는 타인이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얼마나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46쪽)

 

좋은 작품은 비정상적이리만큼 긴장된 나날 속에서만 태어납니다. 그 긴장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재능이랄 수 있겠군요. (66쪽)

 

반사회적인 존재라는 조건 없이는 예술 세계에 뛰어들 수 없습니다. (95쪽)

 

창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것이 아닌 힘에 기대서는 안 됩니다. (96쪽)

 

모든 것은 독립적인 정신과 홀로 가는 자세를 유지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98쪽)

 

또 늙어서 수입이 줄어든 탓에 입원할 돈도, 묘를 쓸 돈도 없다면 결연하게 나가 죽도록 하십시오. 그 정도 각오가 없으면 소설가가 되지 않는 게 좋습니다. (101쪽)

 

그러나 당신의 친구와 지인들은 아주 멀리 떠나가 버렸습니다. 전화를 걸어 불러내면 금방 만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만나 봐야 오가는 얘기가 옛날처럼 흥미롭지도 않고 또 대화 자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이는 우정이 식었다기보다 사는 세계가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예사롭지 않은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옛 친구와 지인을 통해 새삼스럽게 깨달을 겁니다. ... 당신은 당신을 구원할 사람이 당신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자각해야 합니다. (111쪽)

 

절차탁마는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작품과 교류하십시오. (127쪽)

 

아무 가치 없는 흐리멍덩한 정신을 걷어내고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육체를 최대한 명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아 하나, 손톱 하나까지 명징하게 유지하십시오. (140쪽)

 

자유로운 것과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은 다른 얘기입니다. (142쪽)

 

열 시간이 넘는 절식은 당신의 뇌를 강하게 자극하고, 생명력을 발휘하게 하며,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었던 시절의 당신이 거의 살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할 겁니다. ... 당신의 뇌는 안정된 날들을 보내며 게으를 대로 게을러졌습니다. (149쪽)

 

시류에 휩쓸려도 안 되고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 됩니다. 세상의 흐름에 맞춰 휴일에 쉬거나 여름휴가를 가서도 안 됩니다. 재충전을 핑계로 오랫동안 집필을 멀리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실력이 금방 녹슬고 맙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면 며칠이 걸립니다. 이게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계로 들어오지 말아야 합니다. 게으른 자가 어떻게 소설을 쓰겠습니까. 열중하고 몰입하는 자만이 진정한 소설가가 될 수 있습니다. (1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