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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예의있는 월급쟁이

 

오늘 하반기 고과 면담을 했다. 결과는 예상한대로 썩 좋지 않았다. 내가 고과권자라고 해도 나에게 상위 고과를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억울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파트장님은 나에게 내가 가진 능력의 50~60%만 사용하는 것이 보인다며 올해에는 80% 정도까지 끌어올려 일을 해보라고 조언하셨다. 뼈를 때리는 정확한 지적이라 '네'라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속으로는 채 40%도 안한다고 생각하신 것을 그래도 좋게 말씀하시려고 50~60%라고 표현하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회사 생활 만 7년을 넘어가고 있지만, 나는 내 일이 재미가 없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다. 입사 초에는 힘들고 서럽고 눈물겨운 일 투성이라 하루하루 버텨내기의 연속이었다면, 회사에 익숙해진 몇 년차 때 부터는 지루하고 무의미한 날들의 연속이 되어버렸다. 중간에는 퇴사를 하고 세계여행을 가겠다는 야심찬 꿈도 꿔봤지만 얼마 안가 포기했고, 부서 이동으로 그나마 변화를 주면서 회사원 생활을 연명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아예 하기 싫은 것은 아니라, 재미를 붙이고 업무 능력도 더 키우겠다는 계획들은 많이 세웠지만 작심삼일로 끝나기가 부지기수였다.

 

요즘엔 회사 외 활동 ㅡ작사, 독서, 글쓰기(+이것들을 빙자한 빈둥거리기)ㅡ에 집중하느라 솔직히 회사일은 더 뒷전이었고, 업무시간의 집중력이 놀랄만큼 떨어지는 걸 나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사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자기 전까지의 세 시간 정도만이 내 하루에서 유의미한 시간이고, 언제부턴가 회사에서의 시간은 인생에서 '버리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루 24시간 중에 고작 세 시간을 의미있게 산다니, 도대체 이런 손해보는 삶이 어디있단 말인가. 새해를 맞아 회사업무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계획도 세워봤지만, 휴, 아직까지는 별 진척이 없는 상태다.

 

파트장님과의 면담은 웃으며 마쳤지만, 퇴근 버스에 앉아서는 웃을 수가 없었다. 당장 재미가 없다고 때려칠 수 없으니 어떻게든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결심한 게 벌써 몇 번인데, 서른 네 살이고 만 7년을 넘긴 직장인이 이런 피드백을 듣는다는 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하지만 해결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7년 동안 그나마 있던 것도 소멸시켜 버린 업무의 재미를 찾고 내 능력의 80% 이상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걸까.

 

이번 주말엔 다이어리를 들고 조용한 곳을 찾아가 일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봐야겠다. 서른 중반에 이렇게 살기는 쪽팔려서 안되겠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건 월급 받는 회사에 대한 예의도, 그리고 내 인생에 대한 예의도 아니니까. 예의를 갖춘 월급쟁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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