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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당연한 것에 대하여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머리앤의 한 장면이다. 앤의 학교에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진 스테이시 선생님이 새로 부임한 첫 날, 그녀를 보자마자 놀란 학생 한 명이 외쳤다. "선생님이 코르셋을 하지 않았어!!" 아. 나는 그 장면이 나오는 시즌2를 볼 때까지 몰랐다. 19세기말 캐나다가 배경인 드라마 속 모든 성인 여성이 코르셋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대에 여성이 코르셋을 하지 않는 것은 (적어도 캐나다에서는)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어려운 행동이었다는 것을.

 

내가 살고있는 21세기에는 어느 누구도 코르셋을 강요하지 않고('꾸밈 강요'로서의 '코르셋'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코르셋'에 대해서는 말이다), 그것이 여성의 의무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낡은 관습이라고 코웃음을 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진보된 시대에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 빨간머리앤의 그 장면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는 '브래지어'가 떠올랐다. 코르셋과 브래지어의 차이점이 뭘까. 22세기가 되어도 브래지어가 여성이 당연히 착용해야 하는 속옷일까? 나는 그동안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가슴이 드러나는 것은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왔다. 이 수치심이 19세기에 여성이 코르셋을 입지 않을 때 느껴야만 했던 수치심과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빨간머리앤은 내게 많은 것을 일깨우고 생각하게 한다. 아직은 당장 탈브라선언을 할 만큼 가치관이 확고해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브래지어가 당연한 속옷이 아님을, 여성에 대한 굴레일 수 있음은 상기하게 되었다. 19세기 어떤 곳에서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은 당연하지 않고(극 중 배시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기차 탑승을 거부당한다), 그 당시 전통을 어기는 무례함으로 취급받던 진보적인 사상들이 지금은 인간의 기본 권리이기도 하며(빨간머리앤 시절의 여성들은 여성 참정권 획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편 어떤 차별은 지금까지도 끝없이 이어져오고 있다(조세핀 할머니의 동성결혼은 그 때에도 환영받지 못했고, 지금도 많은 곳에서 그러하다).

 

이런 모든 불합리에 대해 생각하게 될수록 이 세상과 사람들이 싫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라리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고 그저 회사에서 승진하고, 결혼하고, 아파트를 사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중년의 '지적인' 남자 앵커와 젊고 '예쁜' 여자 앵커 조합의 뉴스 패턴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 편할 것 같지만, 이미 나는 어릴때부터 그러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 도덕 교과서의 부부의 대화에서, 왜 남편은 부인에게 '~했소?'라고 하고, 부인은 남편에게 '~했어요?'라고 말하는지 궁금했고, 그게 너무 이상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나이를 먹으며 그 궁금증을 잊고 살아왔고, 이런 내게 앤이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지고 만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냐고, 아무 것도 불편하지 않냐고.' 아니, 사실 나는 많은 것이 이상하고, 많은 것들이 불편하다. 한 편으로는 주변 사람들과 너무 다르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삶이 더 피곤해지는 것은 아닐까 두렵지만... 그래도 앤이 내게 준 이 질문들을 품고 나만의 답을 찾아봐야 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어떤 것이 당연하다면, 그건 내가 정하는 게 맞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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