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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빨간머리 앤 (Anne with an E)

 

이 드라마를 본 후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마치 영혼이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렇게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렇게 진보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원작 소설이 무려 1908년에 나왔었다니.. 지금 봐도 혁명적인 내용인데(가치관적인 면에 있어서는 정말로 그렇다. 2020년 한국이 빨간머리 앤보다 훨씬 구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사회 전복적인 소설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즌 1이 재미와 감동을 주면서 마음이 따듯해지는 이야기였다면, 시즌2는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사회의 차별(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에 대해 성찰하고, 그것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앤과 그의 가족, 친구들의 일상을 통해 그려낸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이러한 주제를 단지 "방송용"으로 "소비"하는 많은 드라마들과는 달리ㅡ비교될 수 없을만큼 다른 차원으로ㅡ섬세하고 진지하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앤을 보면서 나의 옛날을 떠올렸다. 스물셋에 혼자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그 때, 거침없이 새로운 세계에 도전했던 십년 전의 모습 말이다. 미래에 받고 싶은 혼수로 책을 고르는 앤의 모습을 보면서, 명품가방 예물보다는 스피커를 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가 떠올라 공감이 가기도 했다. 한편으론 지금의 나는 사는대로 생각하는 틀에 박힌 사람이 되 버린건 아닌지 하는 반성도 하게 되었고 말이다. 이제 마지막 시즌을 남겨두고 있는데, 시즌3은 천천히 아껴 보려고 한다ㅠㅠ(물론 시즌4가 나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코로나가 끝나면 앤 이야기의 배경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여행도 다녀오고 싶다.

 

앤으로부터 느낀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지금 막 생각났다. 바로, "해방"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었던 여성의 해방, 타인의 편견으로부터의 해방, 사회가 규정한 "모범적"인 삶의 양식으로부터의 해방. 부부와 자식의 결합으로 정의되는 "정상적"인 가정상으로부터의 해방. "이성"의 "배우자"가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해방. 이러저러한 모든 시선, 규범, 양식, 가치, 관습, 전통으로부터의 해방, 해방, 해방!!

 

빨간머리 앤, Anne with an E, 내 인생에 손꼽히는 명작 드라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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