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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글이 내게 주는 것

언제부터였을까.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과거는 정리되지 않은채로 뒤섞여 버리고, 이렇게 미래를 맞기엔 너무나도 불안했다.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려 친구들을 만났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용기내어 전한 몇 번의 순간들엔, 내가 꺼내놓은 모양대로 상대의 마음에 닿아주질 않았다.
한없이 큰 고백이 거품처럼 사그라들어 스친 이야기가 되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에게 어떻게 나를 풀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
내가 아직 소울메이트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를 원망했다.

그러다 문득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애초에 정리되지 않은 하소연을 내 맘처럼 들어줄 사람은 없다는 걸.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을 상대가 풀어주길 바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글을 시작한 것 같기도,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 같기도 하다.

순서가 뭐래도 상관없이, 글을 쓰며 나는 한 조각 찰나의 평화를 얻었다.
아무도 내 욕심만큼 담아주지 않던 이야기를, 글은 딱 내 심정 그대로 담아주었다.
순간에 떠오른 불완전한 표현으로 뱉던 말들을, 한 단어 한 문장 고심해 더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 속의 글도 나를 위로했지만,
누군가 볼 수도 있는 블로그에 쓴 글은 이상하게도 내 안에 잠겨있던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다음날도, 일주일 후에도 조회수는 0이었지만,
막힌 방이 아닌 뚫린 곳에서 소리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가 해소됨을 느꼈다.
사실은 조회수가 0이어서 더 자유롭고 편하기까지 했다.

글을 쓰며 어쩌면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래도 이 하루가 아주 부질없지는 않았다고 위안한다.
이 글을 읽어줄 누군가의 시간을 고대하고, 무심한 척 하면서 반응을 기다린다.
퇴고하는 척 읽고 또 읽으며 오늘의 한 편에 뿌듯해한다.
글을 알아가는 이 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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