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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부장님의 퇴사

회사에 입사한지도 어느덧 만 7년을 채워간다.

입사 2개월만에 첫 사수가 퇴사하고 줄줄이 네다섯명의 상사를 떠나보내고,

해외영업에서 마케팅으로 부서를 옮기고,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도 했다.

하루에 한 번 꼴로 울던 신입사원 시절을 지나 눈 떠보니 어느새 짬 찬 8년차가 되어버렸으니, 시간이란 정말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P 부장님이 퇴사를 하셨다.

신입사원 시절, 영업부서에 혼자 여자로 들어와 남자 직원들에게 묘하게 따돌림을 받던 그 때,

내게도 '친구'가 있다고, 같은 편이 있다고 느끼게 해 주신 옆 부서의 여자 부장님 이시다.

늘 어두운 표정으로 밤늦게 야근하던 나를 불러 밥을 사 주시며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주말에는 부장님의 오픈카를 태워 여주 아울렛으로 쇼핑을 데려가 주시기도 했다.

부장님, 나, 그리고 나와 친했던 J대리까지 세 명이서 서울의 유명 브런치도 자주 먹으려 다녔다.

만약 회사에도 연기대상 같은 시상식이 있다면, 모두 부장님 덕분에 내가 버틸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화이트데이에 서래마을에 가서 사주셨던 스테이크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회사일과 연애 모두 최악이던 나에게 말 그대로 '힐링'을 선물해 주셨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부터 부장님과의 사이가 조금씩 멀어졌다.

J대리가 부서를 옮겨 부장님과 함께 일하게 되며 둘의 사이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J대리는 부장님과 일하며 힘든 점을 매일 내게 토로했다.

나 또한 부장님과 업무가 겹치게 되며 서로 실망하는 부분과 작은 마찰들이 생겼다. 부장님의 직설적이고 때로는 공격적인 말투는 친한 사이로 지낼때는 괜찮았지만 업무 관계에서는 조금 힘들었다. 파트장이 되면서 예전과는 달라지셨다는 느낌도 들었다.

여전히 예전과 같이 인사하며 챙겼지만, 더이상 주말에 쇼핑을 함께 가는 일은 없었다.


이주 전, 갑작스럽게 부장님께서 퇴사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 온 팀장과 코드가 맞지 않아 자주 깨지셨는데, 그 때문이라고 한다. 송별 저녁을 먹자고 할 자신은 없어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부장님 자리에 가서 마지막 감사 인사를 하는데 당황스럽게 대뜸 눈물이 흘렀다.

부장님은 놀라서 나를 달래주시다가 결국 눈물이 맺히곤 나중에 보자고 황급히 나를 돌려보내셨다.

며칠 후 메일함엔 부장님의 퇴직인사 메일이 도착했다.


세월이란 이렇게 흘러가나보다.

인생의 암흑기도 언젠가는 지나가고,

암흑기에 날 구원해 준 친구도 언젠가는 멀어지고,

또 언젠가는 완전히 떠나가게 되는 것.


박부장님,

덕분에 이 회사에서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어요. 저의 구원자이셨어요.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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