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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애 두 번째 부동산 계약서

2023년 9월 26일 화요일 오후 7시, 한 시간 전에 아파트 월세 계약을 하고 왔다. 내 생애 두 번째 부동산 계약이다. 첫 번째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원룸의 월세 계약을 한 2년 전 이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5만원, 관리비 8만원까지 하면 63만원으로 고가는 아닌 집인데도, 첫 계약이라 모든게 너무나 겁났던 기억이 난다. 내 돈 500만원을 떼일까 봐, 집 주인이 이상한 사람일까봐, 내가 부모님께 독립해서 잘 살수 있을지 모르겠어서, 그냥 전부 다 겁이나고 두려웠었다. 어찌어찌 계약을 완료하고 독립해 나와 살던 첫 달에, 불안증을 못이기고 마음건강 클리닉까지 다니던 멘탈 쪼랩 시절이었다.

 

어느덧 2년이 흘러 멘탈 쪼랩에서 중랩 정도로 진화한 나는, 이번엔 보증금 1000만원에 80만원 월세인 풀옵션 아파트를 구했다. 매매도 여러군데 알아봤지만 타이밍과 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어 결국 매수는 하지 못했다. 내 월급에 관리비까지 월 100만원을 쓰는 건 아주 큰 무리였지만, 2년 동안 월세로 2천만원을 쓰는 대신 나중에 매매를 2천만원 이상 저렴하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계약을 감행했다. '아파트를 전세가 아니고 월세로 간다고?' 친구들과 가족들 모두 놀랐지만, 나는 내 돈 몇 억을 쌩판 모르는 남에게 맡기는 전세 계약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정말 월 100만원이 나가게 된 만큼, 더 절실하게 돈을 벌 생각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돌아오는 길, 가계약을 했던 날의 뿌듯함은 사라지고 뭔지 모를 불편함과 불안함이 나를 감쌌다. 월세를 선불로 달라는 부탁, 천장을 뚫지 말라는 요구...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였는데도 집주인의 그런 요구들이 뭔가 내 마음을 점점 불편하게 만들었다. 계약서를 쓰고 다시 가서 보니 집은 생각보다 작았고, 에어컨 호스에서는 물이 새고 있었다. 왜 선불로 해준다고 대답을 바로 했지...? 집주인이 대출을 못 갚아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지는 않겠지?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런데... 정말로 주인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건가? 아니. 아닌 것 같다. 이건 처음 느끼는 기분이 아니다. 내가 인생의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느꼈던 감정이다. 2년 전 원룸 계약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나는 이런 기분을 느꼈었다. 왠지 모를 불편함, 괜히 했나 싶은 후회, 그냥 있을 걸 하는 생각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행기 티켓을 끊어놨을 때도 느꼈고, 부모님 품안에서 독립을 할 때도 느꼈던 기분이다. 그렇다면, 이 기분은 내가 한 스텝 더 성장하는 단계에서 일어나는 느낌이구나...! 내 작은 세상의 경계를 한 칸씩 확장할 때, 나는 이런 기분을 느끼는구나.

 

생애 두 번째 부동산 계약서를 쓰고, 나는 나에 대해 한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괜히 한 건지 잘 한 건지 후회되고 불안하다면, 그건 내가 무언가에 도전했다는 뜻이고 변화를 시도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도전과 변화는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므로, 이 느낌은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 나는 오늘 성장했구나! 이제 멘탈 중랩이라고는 어디가서 말 할 수 있는 수준이구나!

 

다음 부동산 계약은 생애 세 번째 계약이 될 테니, 오늘보다 더 능숙하게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땐 오늘처럼 '선불이요? 넵!' 하고 바로 대답하는 것보다는 좀 더 전략적인 거래를 해야지. 오늘 소장님과 집주인께 소소한 간식을 선물했더니 계약이 부드럽게 흘러간 걸 기억해서 다음 번 계약 때도 작은 선물을 사가야지. 내가 손해봐도 괜찮으니 도전과 성장이 더 중요하다는 이 마음 언제나 변치 말아야지.

 

원룸에서의 남은 한 달, 그리고 아파트에서 살게 될 그 다음의 나날들이 기다려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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