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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거슬리지 않기 실험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말하지 않았는가. 인생은 내가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젊은이들이 당장 인생을 실험해보는 것보다 삶을 사는 법을 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일단 일대의 큰 실험을 해보기 전에, 작은 실험들을 먼저 해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는 '거슬리지 않기' 실험, 정확히는 '타인을 거슬려하지 않기' 실험이다.

 

실험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척추와 골반 교정 치료를 받으면서 부터인데, 치료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가까이 앉아서 치료를 해서 불편하게 한다거나, 한 번은 입안에 샌드위치를 우걱거리면서 치료를 시작한 적도 있고, 애매하게 대화 코드가 안맞아서 약간씩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평소의 나라면 치료사를 바꿔달라고 하거나 환불을 선택했겠지만, 왠지 이번엔 불편한 부분을 치료사에게 말을 해서 조금 더 맞춰보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그런 말을 하는 연습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싫은 말을 하는 데 있어서는 특히 소심하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치료중에 조금 더 떨어져서 앉아달라고 말했는데, 선생님은 바로 가볍게 네 라고 하고는 떨어져 앉고 자연스럽게 계속 대화를 이었다. 뭐야, 이거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비록 떨어져 앉고 나서도 계속 수다를 떨다가 치료받는 내게 침을 튀기긴 했지만.. (역시 이 선생님은 강적이다.) 그 후로 몇 회차 치료를 더 받고 있는데, 여전히 말투는 거슬리고 솔직히 그 분은 '나의 코드에 맞는' 인간형은 아니다. 하지만 더이상 '내 코드'가 아닌 사람들에 거슬려 하면서 살기도 싫고 거슬린 마음에 나만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것도 그만하고 싶기 때문에, 치료사와 불편하지 않게 지내는 연습 실험을 지속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실험을 조금 더 확장해서, 내게 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그 말투나 행동이 거슬렸던 여러 사람들에게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뒷짐지고 사무실을 어슬렁 거리며 권위를 부리는 부장, 목소리가 이상하고 띠꺼운 표정으로 늘 쌩까는 직원, '왜 표정이 저렇지, 왜 저렇게 생각하지, 왜 저런말을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던 사람들에게도. 떨어져서 앉아달라는 것처럼 꼭 말을 해야되는 일은 가볍게 말을 하고, 아닌 것은 '각자 생긴대로 살 뿐(aka. 너는 너대로 살든지)'이라고 신경쓰지 않아보기로 했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거창하게 '거슬리지 않기' 실험으로 제목도 지었다.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불교의 가르침을 어렵게 돌아서 얻는 방식이다. '내가 옳다'는 한 생각만 내려놓으면 남이 틀린 것이 없기 때문에 거슬릴 것 또한 없는데, 그것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해 이렇게 뱅뱅 돌아가는 실험을 하는 것일수도 있다. 뭐가 맞든 간에, 프로젝트를 하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실험을 해보려고 한다. 정말 타인의 행동에 덜 거슬리는 나로 바뀔 수 있을까? 사람들의 생긴대로의 모습을 인정할 수 있을까? 결과는 60초, 아니 언젠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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