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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소설 <아몬드> 이야기 - 친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 예를 들어, 이렇게 너와 내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 같이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특별히 돈이 오가지 않는데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이런 게 친한 거란다. - 사랑. - 그게 뭔데? 엄마가 짓궂게 물었다. - 예쁨의 발견. 꽤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선천적 편도체 이상으로 감정을 느낄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윤재, 그리고 세상이 주는 상처를 온 몸으로 느껴 흡수하고 마는 곤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곤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준 윤재가 기억에 남는다. 곤이의 아픔, 절망, 고통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지만, 윤재는 그저 곤이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철사형에 대한 동경과 그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 기준에선) 뒤틀린..
당신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당신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당신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바란다 나를 그리워하기를 예뻐하기를 내게 그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당신의 머리를 따듯하게 보듬어주는 생각을 한다 많이 애쓰더라도 그 안에 작은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깊은 평화는 내게 찾아온다 기실 진정 바라는 것은 그대가 아닌 나의 평안이었다고 미안한 입꼬리를 살며시 올려본다 오늘도 당신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8:30 AM 아침 운동을 마치고 사무실로 향하는 짧은 길 덜 말라 아직 촉촉한 머리카락 사이로 불어드는 바람 그 바람에 날려 보드랍게 종아리를 스치는 원피스 자락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 구두소리 문이 열리고 닫히며 커졌다 작아지는 목소리들 문득 돌아보니 아무도 없는 길에 바람은 계속 내 앞머릴 흩뜨려 아마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그런 순간
복서의 어느 날 복서의 어느 날 체육관에 가려고 츄리닝을 주워입다가 날이 추울 것 같아 찢어진 청자켓을 위에 걸쳤다 나름 복서의 폼이 나는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어하며 집을 나섰다 땀에 절어 돌아온 집 거실에 아빠가 있었다 나는 뜬금없이 아빠를 향해 오늘 배운 원투잽잽을 했다 아빠도 왕년에 배운 실력으로 원투잽잽을 했다 그만두지만 않았으면 챔피언이 됐을 거라나 밥먹고 방에 들어와 있는데 거실에서 도란도란 엄마 아빠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매일 보는 뉴스 소리도 들렸다 행복인가보다 하는 마음의 소리도 들렸다
손님이 오는 곳 손님이 오는 곳 나의 비밀정원에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나 혼자 마구잡이 뿌려놨던 씨앗들 화분들을 보며 참 예쁜 꽃이라 칭찬해 주었다 한 송이 한 포기 놓치지 않고 봐주면서 처음 찾아준 손님이 더없이 반갑고 기쁘면서도 어쩐지 불안했다 정원에 내놓지 않은 못난 잡초와 풀들이 이 안에 자리함을 나는 알고 있으니까 조급해진 마음은 혹여나 손님이 실망할까봐 미리 고백하기로 했다 나의 정원은 내 마음보다 훨씬 예쁘고 열정적이에요 가지런히 정돈해 줄 맞추느라 공을 들인 거예요 언젠가 정원이 아닌 나를 알게 되더라도 그저 가만히 보아주세요 내 비밀정원에 단골 손님이 생겼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 소노 아야코 서점에서 이 책을 본 지는 꽤 됐지만 읽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서는 대충 알만한 감성 자극 에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지금, 내 편견이 완전히 틀렸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과 내공이 담겨있는, 아프고 깨달은 후에야 쓸 수 있는 그런 에세이였다. 분명 기독교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쓰인 글인데 불법와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종교를 깨달아 갈수록 그 기본 진리에는 구분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었던 구절들을 남겨본다. ------------------------------------------------------------------ 인생의 재미는 이를 위해 지불한 희생과 위험에 정확히 비례한다. 모험을 택하..
나의 인생단어는 무엇일까 생산적인 무언가를 할 의지는 없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을때, 가끔 SBS스페셜을 찾아본다. 오늘 선택한 편은 라는 주제였다. 세 명의 대학생들이 방황하며 자기만의 '인생단어'를 찾는 모습과 함께 각 분야에서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단어'를 보여주었는데, 방송을 보는 내내 나의 20대와 지금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단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내가 늘 바라온 가치는 '자유'와 '재미', 두 가지였다. 늘 자유롭고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왔는데, '생각을 가져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머릿속에나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 그렇게 살고 싶고 '언젠가' 그렇게 살 용기를 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솔직히 말하면 그저 되는대로, 게으르게..
아빠와 TV 나는 스물을 훌쩍 넘긴 성인이지만 엄마, 아빠, 동생과 같이 살고있다. 재작년 정년퇴직하신 아빠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여 엄마의 부동산을 함께 운영하고, 섹소폰 동호회에서 여가를 즐기며 사시는 중이다. 아빠와 나의 관계는 역사가 길고 굴곡도 많았지만 요즘은 그런대로 무난하게 지내는 편이다. 딱 하나, 사소한 그의 행동들을 못마땅해 하는 '나의 마음'만 빼면 말이다. 아빠는 집에 계실 때면 늘 티비를 본다. 어릴 적엔 집에서 책을 보거나 영어공부를 하는 모습도 자주 보이셨는데, 퇴직 후에는 항상 뉴스(7시, 8시, 9시 뉴스까지 끝이 없다), 역사, 중국사극, 정치토론에 관한 티비와 유투브를 틀어놓고 있다. 그리고 논평과 비판, 비난, 내 그럴줄 알았지 등의 평을 자주 하시는데, 그 정치관 및 철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