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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에 대하여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머리앤의 한 장면이다. 앤의 학교에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진 스테이시 선생님이 새로 부임한 첫 날, 그녀를 보자마자 놀란 학생 한 명이 외쳤다. "선생님이 코르셋을 하지 않았어!!" 아. 나는 그 장면이 나오는 시즌2를 볼 때까지 몰랐다. 19세기말 캐나다가 배경인 드라마 속 모든 성인 여성이 코르셋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대에 여성이 코르셋을 하지 않는 것은 (적어도 캐나다에서는)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어려운 행동이었다는 것을. 내가 살고있는 21세기에는 어느 누구도 코르셋을 강요하지 않고('꾸밈 강요'로서의 '코르셋'이 아닌 문자 그대로의 '코르셋'에 대해서는 말이다), 그것이 여성의 의무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낡은 관습이라고 코웃음을 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진..
빨간머리 앤 (Anne with an E) 이 드라마를 본 후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마치 영혼이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인데, 이렇게만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이렇게 진보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원작 소설이 무려 1908년에 나왔었다니.. 지금 봐도 혁명적인 내용인데(가치관적인 면에 있어서는 정말로 그렇다. 2020년 한국이 빨간머리 앤보다 훨씬 구식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사회 전복적인 소설로 평가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즌 1이 재미와 감동을 주면서 마음이 따듯해지는 이야기였다면, 시즌2는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사회의 차별(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에 대해 성찰하고, 그것들을 넘어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앤과 그의 가족, 친구들의 일상을 통해 그려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요즘 이별한 것들 1. 화장 원래도 화장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정말 화장과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눈화장을 한지가 넉 달 정도 지난 듯. 평일 회사 출근해서는 에어쿠션+눈썹+틴트로 뚝딱 마무리하고, 주말엔 거의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외출할 때가 많다. 요즘엔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서 훨씬 더 마음 편하게 노메이크업으로 다니는 중! 시간도 아끼고, 몸도 편하고 참 좋다. 2. 카카오톡 스마트폰 카카오톡 어플을 삭제한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하루종일 단체 채팅을 하면서 내 카톡에 답장이 언제 올라오는지 신경쓰고, 답이 없으면 기분이 상하는 내 모습이 싫어져서 충동적으로 어플을 지웠는데, 그 이후로 카톡없는 삶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다만 집 컴퓨터의 피씨카톡은 유지중이다.) ..
오늘의 작사 단상 오늘 우연히 지코의 이라는 노래를 듣는데 가사가 너무 좋았다. 한 평생이 오늘까지면 발길을 돌릴 곳이 있나요 멋쩍다는 이유로 미루었던 사랑해란 말을 너에게 건네줘 right now 평소 지코가 가사를 잘 쓴다고는 생각했지만 여러 이유로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었는데, 후렴구의 '한 평생이 오늘까지면 발길을 돌릴 곳이 있나요.' 부분에서는 정말 감탄이 나왔다. 랩이 많은 노래라 가사도 많은데, 한 줄 한 줄이 버릴 게 없이 꽉꽉 차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 지코는 한 줄, 한 단어도 흘려보내거나 묻어가지 않는구나. 문득 오늘 작사 수업시간에 낸 과제물에 '너무 흔한 표현을 썼다'고 피드백을 받은 게 떠올랐다. 사실 그 피드백을 받았던 라인은 적당히 흘려보내면서 썼었는데 역시나 티가 났던거다. 나는 곡의 모든..
즐겁고 당당한 싸움의 철학,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 김민식 지음, 푸른숲 김민식 피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공영방송 파업을 그렸던 2017년 다큐멘터리 영화 을 봤을 때다. 영화 속에서 혼자 '김장겸은 물러나라!'라고 외치며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던 모습이 인상깊어 기억에 남았는데, 마침 회사 인근 도서관에서 그의 강연이 열리게 되어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강연은 참 재미있었다. 한양대에 다니면서 중앙대 자전거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상식을 깨는(?) 인생 이야기에 나는 또 한 번 반했고, 질문 답변 시간에 영화 에 관한 질문을 했다. 김민식 피디가 마치 영화 GV에 온 것처럼 많은 분들이 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어서 기쁘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후로 나는 김민식 피디의 팬이 되어 매일 그의 블로그 방문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서들을 읽고, 또 ..
요즘 머릿속 질문들 재능이 있는 걸까? - 일단 한 곡은 낼 수 있었으니 아예 재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미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가는 사람치고는 못 쓰는 것 같다. 예전 습작들보다 오히려 계속해서 퇴보하는 느낌이다. 지금 이 과정이 재미있는 걸까? - 아주 가끔 재미있고, 대부분의 시간은 고통스럽거나 좌절스럽다. 할만큼 했는가? - 아니, 할만큼 다 못했다. 아직 아이돌 그룹별 디스코그라피 정리도 하나도 못했고, 이틀 한 곡 쓰기도 못했다. 빌보드챠트 인기곡 가사 정리도 못했고, 등등... 못한 것 투성이다. 계속하고 싶은가? - 그만 두고 싶은 마음보다는 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오기는 아닐까? 나는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심정은? - 재능이 없는 것 같아 답답한데 이 마음을 ..
진짜 생을 살고 싶다면,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옮김, 바다출판사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새로운 문학을 일으킬 후배 소설가를 고대하며, 그들을 위한 조언을 담은 에세이이다. 문학 언저리 어디쯤에서 적당한 소설들을 내놓으며 소설가 대접에 취해 살고 싶은 이 말고, 진정 인간의 영혼을 파고드는 걸작을 남기겠다는 각오로 소설에 도전하는 사람을 위해 쓴 책이다. 소설가로 사는 법을 말하고 있지만, '소설가' 대신에 '예술가', 또는 '자유인'으로 사는 법이라고 해도 맞을 것 같고, '진짜 인생'을 사는 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철저히 자립할 것, 무리지으려 하지 말 것, 열중하고 몰입할 것, 엄격하게 자기관리할 것. 이런 삶이 너무하다고 생각된다면 소설을 쓰지 말 것.' 엄격하고 단호한 그의..
천명훈의 도전 미스터트롯 2회를 보고 있는데 예선 무대에 뜬금없이 NRG의 멤버 천명훈이 나왔다. 워낙 예능 이미지가 강해서 처음에는 웃기려고 나온 줄 알았는데, 진지하게 무대에 임하는 모습에서 그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미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고, 방송인으로서의 입지도 있는 상황에서 오디션프로에 나오는 게 얼마나 부담이 컸을까? 그냥 트로트를 부르고 싶었다면 자기 자리에서 충분히 음원을 낼 수도 있었고, 티비나 행사 무대에도 얼마든지 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수로서 오디션에 나온다는 건, 지금 가진 위치를 다 버리고 프로 가수로서 경쟁하고 음악인으로서 겨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겠지. 천명훈의 무대는 아쉬웠지만, 100%를 보여주기 위해 120%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본인이 부족했다며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