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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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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TV 나는 스물을 훌쩍 넘긴 성인이지만 엄마, 아빠, 동생과 같이 살고있다. 재작년 정년퇴직하신 아빠는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여 엄마의 부동산을 함께 운영하고, 섹소폰 동호회에서 여가를 즐기며 사시는 중이다. 아빠와 나의 관계는 역사가 길고 굴곡도 많았지만 요즘은 그런대로 무난하게 지내는 편이다. 딱 하나, 사소한 그의 행동들을 못마땅해 하는 '나의 마음'만 빼면 말이다. 아빠는 집에 계실 때면 늘 티비를 본다. 어릴 적엔 집에서 책을 보거나 영어공부를 하는 모습도 자주 보이셨는데, 퇴직 후에는 항상 뉴스(7시, 8시, 9시 뉴스까지 끝이 없다), 역사, 중국사극, 정치토론에 관한 티비와 유투브를 틀어놓고 있다. 그리고 논평과 비판, 비난, 내 그럴줄 알았지 등의 평을 자주 하시는데, 그 정치관 및 철학이 ..
살고 싶은 삶 얻음은 기뻐하고 얻지 못함은 그저 받아들이는 삶을 살고싶다. 나의 친구는 올해 승진을 못 할까봐 작년 한 해동안을 마음 졸이며 보냈다. 그룹장의 한마디와 경쟁자들의 동태에 자주 노심초사 하며 말이다. 결국 그는 승진이 되었는데, 딱히 작년에 비해 행복해진 것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승진 누락'이라는 불행은 피했지만 고배를 마신 경쟁자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힘들고 억울하다며 또 다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도대체 왜, 왜 그는 그런 마음의 불행을 자초하며 사는 것일까. 늘 똑같은 패턴의 걱정, 곱씹는 걱정, 또 다음 걱정과 고난.. 들어주는 것도 점점 힘들고 지쳐간다. 그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물들고 싶지는 않은데.. 매일같이 그렇게 남의 행동과 시선을 의식하고, 스트레스를 자초하는 모습을 듣..
회식 단상 #1 투표의 위험성 오늘은 우리 파트가 새로 조직된 이후 처음으로 맞은 회식 날. 장소 예약을 담당한 김사원이 아침부터 회식 장소 투표 메일을 보냈다. 후보 1. 조개전골 후보 2. 양고기 메일을 개봉하자마자 조개 전골이 끌린 나는 익명 투표창에 1번을 눌렀다. 몇몇 파트원들이 투표를 하던 중에, 갑자기 파트장님이 장소 투표 메일에 전체 답장을 보냈다. Re: 저는 2번 양고기요. 음..? 깜빡깜빡. 모니터에 김사원의 긴급 메세지가 왔다. "대리님, 이거 그냥 양고기집 가자는 건가요ㅠㅠ?" "음.. 아마 투표하는 방법을 모르셨을 수도ㅠㅠ?" 당황하던 사이, 여차저차 파트장님이 투표 방법을 몰라서 답장으로 쓰셨다는 것을 알고 한숨 놓았는데, 최종 투표결과가 1번 조개전골이 되어버려 김사원은 더 난감해졌다...
부장님의 퇴사 회사에 입사한지도 어느덧 만 7년을 채워간다. 입사 2개월만에 첫 사수가 퇴사하고 줄줄이 네다섯명의 상사를 떠나보내고, 해외영업에서 마케팅으로 부서를 옮기고,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도 했다. 하루에 한 번 꼴로 울던 신입사원 시절을 지나 눈 떠보니 어느새 짬 찬 8년차가 되어버렸으니, 시간이란 정말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P 부장님이 퇴사를 하셨다. 신입사원 시절, 영업부서에 혼자 여자로 들어와 남자 직원들에게 묘하게 따돌림을 받던 그 때, 내게도 '친구'가 있다고, 같은 편이 있다고 느끼게 해 주신 옆 부서의 여자 부장님 이시다. 늘 어두운 표정으로 밤늦게 야근하던 나를 불러 밥을 사 주시며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주말에는 부장님의 오픈카를 태워 여주 아울렛으로 쇼핑을 데려가 주시기도 했다...
글이 내게 주는 것 언제부터였을까.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것 같은 느낌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과거는 정리되지 않은채로 뒤섞여 버리고, 이렇게 미래를 맞기엔 너무나도 불안했다.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려 친구들을 만났지만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할 수가 없었다.용기내어 전한 몇 번의 순간들엔, 내가 꺼내놓은 모양대로 상대의 마음에 닿아주질 않았다.한없이 큰 고백이 거품처럼 사그라들어 스친 이야기가 되버리는 모습을 보면서누구에게 어떻게 나를 풀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내가 아직 소울메이트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를 원망했다. 그러다 문득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애초에 정리되지 않은 하소연을 내 맘처럼 들어줄 사람은 없다는 걸.나를 괴롭히는 감정들을 상대가 풀어주길 바라면 안 된다는 걸.깨달았기 때문에 글을 ..
그의 결혼식 "너 내일 A 결혼식 가?" 피티를 마치고 확인한 카톡창에 불청객인 메세지가 하나 떠 있다. 잠깐 당황하고, 어이가 없어져 피식 웃는다. 아마 축의금 부탁을 하려고 연락한 것 같은데, A와 내가 어떤 사이였는지 모르는 오빠이기 때문에 욕을 할 수도 없다. 그냥 재수없는 사고처럼, 결혼식이 내일이라는 걸 알게 되버렸다. A와 나는 입사 동기로,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고 같은 부서로 배치 받았다. 1년을 비밀리에 사귀고, 헤어지고 나서도 같은 팀에서 일한 기간이 2년은 넘었던 것 같다. 헤어진 다음날에도 하루 종일 목소리를 듣고, 다른 여직원들과 웃으며 농담하는 모습을 보곤 했는데. 그 땐 아마 그게 얼마나 힘든건지 가늠도 안되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결국 A가 퇴사하며 우리의 악연(?)은 끝났고, 시간..
탈고 일기 헬스장 피티를 받고 집에 오는 길. 아파트에 들어와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뭐지? 풉.. 헬스용 운동화를 신고 와버렸다. 그럼 내 원래 신발은 어딨지? 제대로 사물함에 두고 온 건 맞나? 아니 두 눈 똑바로 뜨고 내 손으로 사물함에 넣고 왔는데, 어떻게 반대로 넣고 버스타고 집까지 올 수가 있지? 요즈음 잠도 못자고 달려온 피로가 이런데서 빼꼼 티를 내는 것 같다. 요 며칠은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가사가 왜 그렇게 안써지던지. 토요일부터 4일 동안 일, 운동 빼고는 모조리 작업에만 올인했는데 노래에 어울리는 컨셉 잡기가 정말이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조금 고통스러운 느낌이기도 했다. 거의 써놓고 싹 갈아엎기를 두세 번. 제목과 컨셉 바꾸기도 세 번 쯤 했을까. 오늘이 ..
피티 선생님이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로 개인 PT를 한 지 28회 째 되는 날이었다. 나의 운동 선생님은 매우 활발하고 유쾌한 분이었는데, 최근 피곤하고 좀 다운된 모습을 보였다. 이번 달에 다이어트를 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두 명의 사장들이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최근 그 헬스장의 트레이너들이 선생님과 사장들 빼고 다 퇴사를 하게 되었다는데, 새로운 트레이너를 뽑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인 즉슨,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이 하던 일까지 다 해야 한다는 거다. 선생님의 얼굴은 어둡고 말수가 적어졌다. 오늘 운동을 마치고는 나까지 불안하고 우울해졌다. 나는 선생님과의 운동이 즐겁고, 선생님 덕분에 헬스에 재미도 많이 붙이게 되었는데.. 앞으로 남은 13회가 끝나면 30회 재등록을 할 생각이었는데.. 선생님이 그만..